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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의 문제, 과거 데이터 맹신 탈피와 안티프래질
웰스매니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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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발소리와 함께 사료를 받던 칠면조는 축적된 데이터가 자신의 안전을 증명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1,001번째 날, ‘추수감사절’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 앞에서 그 믿음은 산산이 무너진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말한 ‘칠면조의 문제’는 과거의 데이터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금융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상승에 안심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위험은 이미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납적 규칙성이라는 심리적 마취제

평온한 펜션에서 자라는 칠면조 한 마리가 있다. 이 칠면조는 꽤나 영리해서 매일 아침 아홉시에 들리는 주인의 발소리와 맛있는 사료 공급 간의 관계를 분석한다.

첫 날 사료를 먹은 칠면조는 내일도 밥을 얻어먹을 확률을 반반으로 본다. 100일이 지나고 500일이 지난다. 주인의 발소리와 사료 배달은 단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이 일정하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칠면조의 확신도 커진다. 결국 그는 주인이 자신을 아낀다고 믿게 되고, 동료들에게도 “축적된 데이터가 우리의 안전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1,001번째 날 아침, 평소와 같은 발소리를 듣고 반갑게 달려간 칠면조 앞에 놓인 것은 사료가 아니라 도축용 칼이었다. 그날은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바로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제시한 ‘칠면조의 문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시스템을 지배하는 진짜 게임의 룰(추수감사절의 존재)을 모른다면 과거의 데이터는 미래의 파멸을 예측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말해준다.

스스로가 칠면조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믿는 투자자들 역시 수십 년 치 주가 차트를 백테스팅(Backtesting) 분석하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뜯어보며 정교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 그리고 과거 십여 년 동안 이 자산이 연평균 몇 퍼센트씩 우상향했으니 앞으로도 안전할 것이라며 안심한다.

하지만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이러한 사고를 ‘귀납적 착각’이라고 설명했다. 흄은 과거의 규칙성이 미래에도 똑같이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무리 많은 백조를 관찰해서 법칙을 세워도 단 한 마리의 검은 백조(Black Swan)가 나타나는 순간 기존의 모든 법칙은 휴지조각이 된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오랫동안 상승하면 투자자들은 이른바 ‘뜨거운 손(Hot Hand)’ 오류에 빠진다. 농구 선수가 세 번 연속 골을 넣으면 다음 슛도 당연히 들어갈 것처럼 착각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매일 들려오던 주인의 발소리가 안전의 증거가 아니라 단지 도축의 날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의미했던 것처럼, 시장의 평온 역시 위험이 사라졌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러시안룰렛이 알려주는 투자의 함정

이러한 착각을 이해하려면 ‘에르고딕성(Ergodicity)’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간단한 러시아룰렛(Russian Roulette) 게임으로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여섯 명의 참가자가 모여 단 한 발의 총알이 든 권총으로 게임을 한다고 치자. 한 번씩 방아쇠를 당겨 살아남으면 각각 10억원을 주는 게임이다.

이때 통계학자가 나타나 여섯명 중 다섯명이 살아남으니 생존율은 약 83퍼센트이며 기대수익은 8억 3,000만원에 달하는 아주 유리한 투자 기회라고 권유한다. 이것이 다수를 동시에 관찰한 평균값인 앙상블 평균(Ensemble Average)이다. 단순하게 전체 집합의 관점에서는 꽤 괜찮은 베팅처럼 보인다.

이제 방식을 바꾼다. 한 개인이 혼자 방에 들어가 똑같은 권총을 들고 연속으로 6번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한 번 성공할 때마다 10억원을 주지만 6번을 전부 당기는 도중 단 한 번이라도 총알이 격발되면 게임은 끝난다. 과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종 생존 확률은 0%, 즉 확실한 죽음이다. 이것이 한 개인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평균값인 시간 평균(Time Average)이다.

이처럼 다수가 동시에 경험하는 평균과 한 개인이 시간에 따라 연속으로 경험하는 평균이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비에르고딕적인(Non-ergodic)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주식시장은 완벽한 비에르고딕적 시스템이다. 평소에는 꾸준한 수익을 내더라도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손실이 모든 성과를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수익률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패를 피하는 것’이다.

사바나 초원에서 유전된 생존 버그(Bug)

인간이 눈앞의 반복되는 흐름에 쉽게 취하고 파산 경로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인류의 조상들이 살던 아프리카 사바나(Savannah) 초원의 진화적 본능 때문이다. 당시 원시인들이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딱 두 가지였다.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소리라며 가던 길을 가는 최적화 모드와 사자가 있을지 모르니 일단 도망치고 보자는 오버액션 모드다.

대부분의 소리는 바람 때문이었겠지만, 혹여나 진짜 사자가 숨어있었을 때 최적화 모드를 선택한 원시인들은 사자의 먹이가 되어 유전자를 남기지 못했다. 반면 매번 헛다리를 짚더라도 허겁지겁 도망쳤던 소심한 원시인들은 살아남아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대인의 뇌 속에는 자주 일어나는 안전한 신호에는 빠르게 적응하여 뇌 자원을 아끼고 미지의 위험에는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생존 알고리즘이 자체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본능은 고도로 복잡한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거대한 시스템 버그를 일으킨다. 주가가 매일 오르면 뇌는 연산 부하를 줄이기 위해 원래 주식은 사두면 오르는 것이라는 귀납적 결론을 내린다. 남들이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무리의 신호가 들리면 사바나의 대열처럼 맹목적으로 추격 매수에 합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티브래질 전략: 중위험 중수익이 가장 위험하다

그렇다면 펜션 속에서 도축의 날만 기다리는 칠면조 신세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해법은 언제든 깨지기 쉬운(fragile) 포트폴리오를 버리고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스스로 회복하는 안티프래질(Antifragile)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첫째, 평소에는 작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시장이 극단적으로 요동칠 때 폭발적인 수익을 내는 볼록한(Convex) 구조를 짜야 한다. 많은 투자자가 매달 소액의 이자를 받다가 위기가 터지면 원금이 완전히 날아가는 오목한(Concave) 상품에 자금을 묻어둔다. 이는 평소에 조금씩 먹고 한 번에 다 토해내는 가장 전형적인 지는 투자다. 우리는 반대로 평소에 아주 작은 보험료를 지불하더라도 시장의 폭락이나 변동성에 배팅하는 자산을 포트폴리오의 한 축에 항상 배치해야 두어야 한다.

둘째, 어정쩡한 중간 지대를 버리고 극단적인 바벨(Barbell)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야말로 폭풍이 불어올 때 가장 처참하게 깨지는 취약한 구조다. 가용 자금의 90%는 절대 깨지지 않는 초안전 자산에 넣어 방어막을 치고 나머지 10%의 자산만으로 대박이 나면 수십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고위험 비대칭 영역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최악의 시장 상황에서도 손실은 어느 정도 제한되는 반면, 예상치 못한 대호황이나 기술 혁신이 터졌을 때는 무제한의 상방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무엇보다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투자해야 한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분석 도구나 예측 모델도 결국 과거 데이터라는 닫힌 상자 속에서 만든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내가 수집한 정보는 항상 불완전하며 시장은 언제든 게임의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인식론적 겸손함(Epistemic Humility)’을 포트폴리오의 뼈대로 삼아야 한다.

Epilogue: 금융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추수감사절의 도축은 칠면조에게는 세상의 끝이었지만, 주인에게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상이었을 뿐이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거대한 폭락과 붕괴 역시 준비되지 않은 대중에게는 모든 자산이 증발하는 파국이지만 하방을 차단하고 변동성을 도구로 삼도록 야생적으로 설계된 소수의 투자자들에게는 일생일대의 바겐세일이 시작되는 축제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평온함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시장에는 언제나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추수감사절’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포트폴리오는 반복되는 상승에 안주하는 칠면조에 가까운지,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위험까지 감안한 안티프래질한 구조인지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 본 기사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8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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