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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항소심, 김씨 독자 지급 주장하며 대납 의혹 부인
아주경제
이날 언론 보도의 초점은 증인으로 나온 명태균씨에게 쏠렸다. 명씨는 "오 시장이 직접 여론조사를 요청했고 비용은 철강회사 김한정 회장이 부담한다고 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재판부는 명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여론조사를 의뢰받거나 비용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한 점을 들어 "두 사건에서 왜 말이 다르냐"는 취지로 물었다.
이처럼 명씨 진술의 신빙성에 재판부가 직접 의문을 제기한 장면은 분명 이날 공판의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법정에서 수 시간 동안 증인신문을 지켜본 기자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공동피고인 김한정씨가 증인석에서 밝힌 돈의 성격과 명씨를 만나게 된 경위였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김씨가 명씨 측에 돈을 보냈느냐가 아니다. 돈이 건너간 사실 자체는 부인하기 어렵다. 진짜 쟁점은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명태균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김한정씨에게 비용을 대신 지급하도록 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강 전 부시장에게서 "창원에서 온 사람(명태균)이 오세훈 선거 캠프를 어수선하게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고 (창원 출신인) 자신(김한정)이 나서 명씨를 만나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명씨가 캠프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표시하자 이를 달래고, 혹시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편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서 돈을 건넸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명씨를 '명절에 복조리를 팔러 왔다가 팔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에 비유했다. 캠프에서 배척당한 사람을 자신이 거둬 도움을 받아볼 생각이었다는 뜻이다. 첫 1000만원도 오 시장이나 강 전 부시장의 지시에 따른 여론조사 대납금이 아니라 명씨를 달래고 관리하기 위해 자신의 판단으로 준 돈이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김씨와 강 전 부시장이 각별히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는 사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두 사람이 긴밀하게 공모해 김씨를 자금 지급 창구로 삼았다는 구도라면 그에 상응하는 연락이나 협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 드러난 두 사람의 관계와 김씨의 진술에서는 그러한 긴밀성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씨와 명씨가 이후 별도의 인간관계를 형성한 정황이 나타났다. 김씨가 제주도에 머물 당시 명씨가 "(김한정)형님, 저도 제주도에 가겠습니다"라고 하자 김씨는 내심 달갑지 않았지만 오겠다는 사람을 막지 못하고 50만원까지 건넸다고 했다. 그런데 명씨는 혼자가 아니라 김영선 전 의원 측 인사들을 포함한 여러 명과 함께 제주도를 찾았다는 것이 김씨의 법정에서의 설명이다.
대질신문에서도 명씨가 제주도 일을 들어 자신과 김씨와의 관계를 주장하자 김씨는 "놀러 가도 되겠느냐고 해서 온 것이지 내가 초빙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누가 시켜 여론조사 대금을 대신 낸 일회성 관계였다면 굳이 선거 후까지 명씨 일행을 챙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반대로 김씨가 명씨를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후원한 관계였다면 여러 차례의 금전 지급과 제주도 방문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물론 김씨의 말만으로 1심 판단이 곧바로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김씨 역시 공동피고인이므로 자신의 형사책임을 줄이려는 진술인지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일부 시점과 연락 경위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과거 발언과 정확히 맞지 않는 부분도 재판부의 추궁을 받았다.
그럼에도 기자가 법정에서 받은 인상은 김씨가 외운 문장을 반복한다기보다 자신이 왜 명씨에게 접근했고 왜 돈을 건넸는지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명씨를 처음 접한 과정, 캠프에서 밀려난 명씨를 달래려 한 이유, 이후 계속된 개인적 지원과 제주도 일화는 돈의 성격을 '오세훈 측 여론조사비 대납'과는 무관하다, 다시말해 다르게 볼 여지를 만들었다.
재판부가 두 사람을 대질시킨 뒤 "돈이 왜 지급됐느냐", "처음 통화할 당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며 초기 관계 형성 과정에 거듭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였다. 재판부가 확인하려 했던 것은 주변적인 정치 이야기나 여론조사 기법이 아니라 김씨가 왜 명씨를 만났고, 누구의 부탁으로 어떤 명목의 돈을 지급했느냐는 것이 사건의 뼈대였다.
그 점에서 변호인들의 신문은 아쉬움이 컸다. 오 시장 측 변호인단은 명씨 진술의 세부적인 모순을 공격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재판부가 궁금해 하는 김씨와 명씨의 최초 접촉 및 금전 지급 동기를 명료한, 하나의 서사로 정리하지 못했다. 강 전 부시장 측 변호인의 신문도 핵심을 파고들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웠다. 재판부가 찾는 답과 변호인들이 던진 질문 사이에 적잖은 거리가 느껴졌다.
역설적으로 변호인들이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을 김씨 자신의 진술이 메웠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자신이 명씨에게 돈을 준 사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오세훈이나 강철원이 시켜서 준 돈은 아니다"라는 취지를 자신의 행동과 인간관계로 설명했다.
형사재판은 인상이나 진정성만으로 결론 나지 않는다. 객관적인 금융자료와 통화·메시지 기록, 진술의 일관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의 전제가 되는 '의뢰와 대납의 공모'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기자는 김씨의 진술이 항소심 판단을 움직일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고 느꼈다. 명씨의 진술이 흔들린 것 만큼이나 김씨가 돈을 지급한 독자적인 동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오 시장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였다.
다만 결론은 아직 재판부의 몫이다. 다음 공판에서도 김씨에 대한 추가 신문과 관련 증거 조사가 이어진다. 이날 법정에서 확인된 것은 무죄가 아니라, 1심의 '여론조사비 대납'이라는 단선적인 판단을 다시 따져볼 만한 상당한 균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