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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공세 속 빛나는 경주기행, 묵직한 모녀 서사
맥스무비
누적 관객 31만 575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완성도와 화제성, 물량 공세까지 모두 갖춘 두 할리우드 대작 사이에서 ‘경주기행’은 개봉 첫 주부터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밀도는 흥행 수치와는 비례하지 않는다. 천만 관객의 함성 아래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이다.
이야기는 8년 전 넷째 딸 경주를 앗아간 살인범 백상현(변요한 분)을 향한 복수에서 출발한다. 엄마 옥실(이정은 분)은 세 딸 장주(공효진 분), 영주(박소담 분), 동주(이연 분)를 이끌고 경주로 향하는데, 겉으로는 평범한 가족 여행이지만 실은 범인을 붙잡아 단죄하려는 은밀한 계획이다.
계획은 마취에서 깨어난 백상현으로 인해 삐걱대기 시작한다. 복수극, 로드무비, 범죄스릴러의 공식을 넘나들면서도 ‘경주기행’이 파고드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바로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모녀관계 그 자체다.

수학여행지이자 관광명소인 동시에 무덤과 죽음의 흔적을 품은 공간, 경주. 이 이중적 장소성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개인의 상흔에 머물렀던 전작 ‘갈매기’(2021)에서 가족의 상흔으로 반경을 넓힌 김 감독의 진화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또 다른 축은 배우들이다.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에 변요한까지 가세한 앙상블은 눈을 떼기 힘든 밀도로 스크린을 채운다.
어긋나는 박자로 흘러가는 네 모녀의 관계가 웃음기를 머금으면서도 결국 애잔함을 남기는 이유는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사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