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 읽음
14연패 시련 극복하고 '우승 감독'으로 우뚝, 이영택 감독 각오 "몰빵도 능력… 정상 지킬 것"
마이데일리
GS칼텍스 이영택(49) 감독에게 지난 두 시즌은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2024-2025시즌 14연패에 빠져 감독직을 내려놓을 생각까지 했던 그는 결국 2025-2026시즌 봄 배구에서 반전을 일궈내며 '우승 감독'이 됐다.
GS칼텍스는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4위 흥국생명과의 준플레이오프(단판), 2위 현대건설과의 플레이오프(3전 2선승제), 1위 한국도로공사와의 챔피언 결정전(5전 3선승제)까지 6경기를 내리 이기며 완벽한 ‘업셋 우승’을 완성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행복을 만끽할 여유는 길지 않았다.
13일 일본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이영택 감독은 "봄 배구 당시 경기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우승의 여운은 별로 안 남는 것 같더라. 정말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까 끝이었다"고 돌아봤다.
지난 시즌 우승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고비로 준플레이오프를 꼽았다.
이 감독은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한 게 가장 컸다. 부담이 정말 큰 경기였기 때문이다. 파이널에서는 김천에서 첫 경기를 이긴 것도 중요했지만 2차전까지 잡은 게 굉장히 컸다"고 설명했다.
◇ 14연패 때는 “감독 그만두려고 했다”
지금은 우승 감독이지만 2024-2025시즌만 해도 벼랑 끝에 서 있었다. GS칼텍스는 전반기 팀 역대 최다인 14연패 수렁에 빠졌다. 이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감독을 그만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의 줄부상 등 악재가 겹쳤지만 그는 핑계를 대기보다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 감독은 "결국은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자책을 많이 했다. 그만두겠다는 말씀을 구단 쪽에 드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용희 GS칼텍스 단장과 김선욱 사무국장이 그를 만류했다. 한양대학교 1년 선배인 최태웅 전 현대캐피탈 감독도 훈련장을 찾아와 이영택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 GS칼텍스는 후반기에 승리를 쌓으며 최하위를 면했다.
지난 시즌에도 GS칼텍스는 4라운드까지 5위로 처져 있었지만, 막판 4연승을 달리며 정규리그 3위를 꿰찼고 기적 같은 우승을 일궈냈다. 그 과정에서 이 감독 자신도 달라졌다. 정규리그에서는 젊은 선수를 키우기 위해 부진하더라도 기다려주는 편이었지만 단기전에서는 승부를 걸어야 했다.
이 감독은 "포스트시즌은 단판으로 끝날 수도 있는 짧은 승부이지 않나. 교체나 작전 타이밍을 정규리그보다 빨리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시 돌아오는 정규시즌에서는 다시 ‘기다리는 감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 감독은 “선수를 성장시키려면 꾸준히 기회를 줘야 한다. 팬들께서 ‘감독이 관망한다’ ‘뒷짐 지고 있다’고 하실 때도 있는데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러고 있는 건 아니다. 하하"라며 웃어보였다.
◇ “몰빵도 잘하면 능력이다”
이영택 감독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는 ‘몰빵’이다. 한 선수에게 공격을 집중시키는 배구를 두고 흔히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이 감독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저는 몰빵을 그렇게 부정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능력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선수 시절 뼈아픈 기억이 있다. 대한항공에서 뛰던 당시 삼성화재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었는데 가빈과 레오 등 압도적인 외국인 공격수를 앞세운 상대에게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이 감독은 "저는 선수 시절 정규리그 우승은 해봤지만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한 번도 못 했다. 삼성화재의 ‘몰빵’에 당했다. 알고도 못 막았다"라면서 "2011~2013년엔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가서 졌다. 그런데 그것조차 그 팀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외국인 선수를 뽑은 것도 복이고, 그 선수에게 계속 안정적으로 공을 올려줄 수 있는 것도 세터의 능력이다. 뒤에서 리시브와 수비를 해주는 선수들의 희생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고 했다.
그 경험은 훗날 지도자가 된 이 감독에게 중요한 교훈이 됐다. 지난 시즌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이 감독은 선수 시절 자신을 좌절시켰던 삼성화재의 경기 기록지를 직접 찾아 세터들에게 건넸다.
이 감독은 "당시 가빈의 공격 점유율이 70% 정도였는데 성공률도 70%대였다. 그렇게 저희가 지고 삼성화재는 우승했다. 그 기록은 영원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터들에게 한마디 했다. 그는 "이제 단판 승부니까 아끼지 말고,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올려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GS칼텍스의 몰빵은 주포 실바다. 실제로 준플레이오프에서 실바의 공격 점유율은 50% 가까이 치솟았다. 성공률 역시 50%에 달했다. 이 감독은 여기서 만족하기는커녕 다음 경기를 앞두고 세터들에게 농담 섞인 ‘질책’을 했다.
그는 "잘했는데 내가 기대한 만큼 많이 실바에게 올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여자 배구에서 성공률 50%면 엄청난 건데 ‘더 올려도 괜찮다’고 했다. 선수들이 ‘실바 혼자 하드캐리한다’는 말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했다. 우승하면 결국 우리 모두가 잘한 것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GS칼텍스는 결국 정상에 올랐고 실바는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 감독은 “실바가 MVP를 받았지만 결국 선수들 모두가 우승 멤버로 남는 것”이라고 했다.
◇ “올해 부담은 지난해와 비교도 안 된다”
한 번 정상에 올랐다고 마음이 편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 감독은 "지난 시즌을 시작할 때 느꼈던 부담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지금 걱정과 부담이 크다"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제가 우승하면서 눈높이가 높아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선수들이 지난 봄에 너무 잘했다. 그런데 지금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고 미흡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코칭스태프에도 변화를 줬다. 일본인 코치 2명을 영입했다. 선수들이 일본 배구의 세밀한 기술과 훈련법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이영택 감독은 "우리 국내 코치들도 지도력이 있고 열심히 가르치지만 요즘 선수들 사이에서 일본 코치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선수들의 요구도 고려해 영입했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가와무라 신지 코치는 아웃사이드 히터 출신으로 일본 SV리그 남자 팀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지난 시즌 우승 주역인 아웃사이드 히터 권민지가 특히 가와무라 코치에게 궁금한 점을 시도 때도 없이 물어본다고 한다.
또 한 명의 일본인 코치 이시이 스구루는 세터 전문 지도자다. GS칼텍스로선 안혜진의 이탈로 생긴 공백을 김지원과 새로 영입한 박사랑이 얼마나 메우느냐가 관건이다. 이 감독은 “김지원과 박사랑, 두 선수가 어떻게 보면 이번 시즌의 키 플레이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새 시즌의 핵심은 공격의 다변화다. GS칼텍스에는 실바라는 확실한 해결사가 있지만 이 감독은 그에게 쏠리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한다. 실바는 V리그 최초로 3시즌 연속 1000득점을 넘겼다.
그런 점에서 새로 합류한 아시아쿼터 선수 타나차(태국)에게 기대가 크다. 이 감독은 "타나차 쪽에서 공격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세터들의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 미들블로커들의 공격 효율이 올라가도 실바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렇다고 자신의 팀이 가진 최고의 무기를 억지로 감출 생각은 없다.
그는 "강한 서브를 넣고 블로킹으로 끝내버리는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배구다. 공격도 골고루 분배되면 좋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우리 팀에는 실바라는 엄청난 외국인 선수가 있다. 그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우리 팀의 장점이다. 장점은 살리고 약한 부분을 보완해야한다"고 말했다.
실바는 지난 시즌 V리그에서 공격 시도가 가장 많았지만, 성공률도 47.33%로 가장 높았다.
올 시즌은 이영택 감독에게 한 번의 우승이 행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시즌이다. 이 감독이 지난 봄 배구에서 얻은 답은 심플하다. 그는 “가진 무기를 최대한 살리고, 승부를 걸어야 할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겠다"고 굳은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