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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와 돼지고기 올리는 제주 차례상, 환경 반영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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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상 하면 보통 흰쌀밥과 떡, 과일, 전과 나물 등을 떠올리지만 제주도의 차례상은 조금 다르다. 카스테라와 찐빵 같은 빵이 떡을 대신하고 돼지고기 적갈이 빠지지 않는다. 메밀로 만든 빙떡이나 제주 특유의 떡도 차례상에 오른다.
제주 차례상의 독특한 모습은 섬의 식생활 환경과 관련이 있다. 제주에서는 과거 논농사를 짓기 어려워 쌀이 귀했다. 제주농업기술원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제주에서 주로 생산된 농산물은 보리·조·메밀·콩·피·고구마 등이었고, 쌀은 명절이나 제사 같은 큰일에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1970년대까지는 보리밥과 조밥이 일반적이었고, 1980년대 초반까지도 쌀과 보리를 섞은 밥을 먹었다.

떡도 자연스럽게 쌀을 중심으로 한 다른 지역과 달랐다. 국립국어원이 정리한 제주도 떡 조사 자료를 보면 제주에서는 좁쌀과 보리, 메밀, 고구마 등을 활용한 떡이 발달했다. 쌀로 만든 떡은 ‘곤떡’, 좁쌀로 만든 떡은 ‘좁쌀떡’, 메밀로 만든 떡은 ‘모멀떡’, 고구마로 만든 떡은 ‘감저떡’으로 불렸다. 제사에 올리는 시루떡은 ‘제펜’이라고 했다.

이런 식재료 환경은 차례상에도 반영됐다. 제주에서는 쌀로 만든 떡이 부족하거나 귀했던 시절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제사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카스테라와 롤케이크, 소보루, 파운드케이크 등 빵을 차례상에 올리는 집도 있다.

제주방송이 제주 향토음식 전문가와 전통음식 자료를 바탕으로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제주에서 빵을 차례상에 올리는 풍습은 오래된 밀가루 음식 문화와 연결된다. 고려 말 제주에 설치됐던 탐라총관부 시기에 들어온 ‘상화병’이 제주에서 현지화하면서 ‘상웨떡’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상웨떡은 밀가루나 보릿가루를 이용해 만든 발효 떡으로, 오늘날의 찐빵과 비슷한 형태다. 이후 팥앙금 등을 넣은 형태로 발전했고 제사나 상례 같은 큰일에도 사용됐다.

현대의 카스테라가 차례상에 등장한 것도 이런 변화와 연결된다. 전통적인 상웨떡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빵으로 바뀌었고, 집안에 따라 카스테라나 롤케이크 등을 올리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차례 음식의 재료가 반드시 옛날 방식 그대로 유지된 것은 아니다.

제주 차례상에서 또 눈에 띄는 음식은 돼지고기다. 제주에서는 돼지고기를 삶아 올리거나 양념한 고기를 꼬치에 꿴 적갈 형태로 준비하기도 한다.

돼지고기는 제주에서 오래전부터 잔치와 제례 등 큰일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였다. 제주 농업기술원이 정리한 구술 자료에서도 과거 잔치 때 돼지를 잡아 머릿고기와 내장 등을 삶아 나누고, 돼지고기를 여러 음식과 함께 손님에게 대접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제주식 적갈은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양념한 뒤 꼬치에 꿰어 굽거나 익혀 만든다. 다른 지역의 산적과 비슷하지만 제주에서는 돼지고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 음식이면서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나눠 먹기 편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특징도 있다.

떡의 종류도 독특하다. 제주 전통 떡 가운데는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뿐 아니라 모양 자체에 의미를 담은 음식이 있다. 메밀가루를 이용해 얇게 부친 뒤 무채 등을 넣어 말아 만드는 빙떡도 대표적인 제주 음식이다.

빙떡은 제사 음식뿐 아니라 손님 접대나 잔치 음식으로도 활용됐다. 제주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과거 먹거리가 부족했던 제주에서는 명절에 귀한 생옥돔이나 건옥돔을 미리 준비해 차례상에 올렸고, 다른 집을 방문할 때는 빙떡을 만들어 나누기도 했다.

제주의 떡 문화에는 농경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자연에 대한 의미도 담겼다. 전통적으로 차례상에 올리는 떡을 층층이 괴어 올리면서 땅과 밭, 해와 달, 별 등을 상징하는 방식이 전해졌다. 쌀이 풍족하지 않았던 제주에서는 좁쌀·보리·메밀·고구마 같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곡물이 떡의 재료가 됐다.

과일 역시 제주 차례상의 특징을 설명하는 요소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과거에는 육지에서 과일이나 식재료를 들여오는 일이 쉽지 않았고, 제철에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중요했다. 그래서 떡의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어 상을 채우는 식문화가 발달했다는 설명도 있다. 제주 전통음식 자료에서는 떡을 의례에 사용하는 음식으로 분류하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에 따라 종류가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제주 차례상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또 한 번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던 떡을 방앗간에서 마련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카스테라나 찐빵처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 전통 음식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국립국어원 조사에서도 쌀 중심의 식생활 변화와 함께 제주 전통 떡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그렇다고 제주 차례상에서 전통 음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돼지고기 적갈과 메밀 음식, 제주식 떡, 옥돔 등은 지금도 명절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카스테라나 찐빵 같은 빵이 더해지면서 제주만의 차례상 모습이 만들어졌다.

차례상에 카스테라가 올라가고 돼지고기 꼬치가 놓이는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섬의 농업 환경과 식재료 사정에 맞춰 음식을 마련해온 결과다. 쌀 대신 보리와 좁쌀, 메밀과 고구마를 활용하고, 구하기 쉬운 밀가루 음식으로 떡을 대신하면서 지금의 제주 차례상이 형성됐다.

명절 음식은 지역마다 달랐다. 제주에서는 특히 섬이라는 환경이 음식의 형태와 재료에 직접 반영됐다. 카스테라 한 조각과 돼지고기 적갈 한 꼬치에도 제주 사람들이 어떤 재료를 먹고 살아왔는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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