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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무캉차이 다랑논 여행, 가리야 리조트 웰니스 휴식
아주경제
'가리야 무 캉 차이'에 닿은 건 오후 6시를 훌쩍 넘겨서였다. 순수 이동시간만 5시간 50분. 두어 번 쉰 시간까지 치면 꼬박 7시간을 길 위에 있었다. 긴 산길을 무사히 건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짐을 풀자마자 수마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커튼을 젖히자 전날 놓친 풍광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산비탈을 따라 다랑논이 층층이 내려앉았고 그 너머로 산등성이가 겹겹이 포개졌다. 잠이 덜 깬 채 한참을 창가에 서 있었다. 어제 차 안에서 졸며 지나친 풍경이 이랬을까. 긴 산길 끝에서 만난 아침에 괜스레 마음이 달떴다.
무 캉 차이는 몽족(H'mong)이 대대로 산비탈을 일궈 논을 만들어온 고산지대다. 5~6월엔 물을 가둔 논이 하늘과 산을 비추고, 7~8월엔 짙은 초록으로 덮이는 이 다랑논은 2007년 베트남 국가 명승지로 지정됐고, 2019년에는 국가특별유적으로 격상됐다. 벼가 여무는 9~10월이면 산비탈 전체가 황금빛으로 바뀐다. 무 캉 차이의 '골드 시즌'이다.
아직은 마음 단단히 먹어야 닿는 곳이지만, 닿는 길은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올해 연말 고속도로 연결 공사가 마무리되면, 하노이에서 무 캉 차이까지 이동시간이 4시간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틴판 총지배인에게 이곳이 말하는 럭셔리가 뭔지 물었다. 그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를 강조했다.
"럭셔리는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 아닙니다. 잘 쉬고, 다시 균형을 찾고, 더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 지금의 럭셔리는 한층 조용해졌습니다."
여섯 시간을 달려 산속까지 들어온 여행자의 귀엔 이것이 '여유'라는 말로 들렸다. 시간을 잘게 쪼개 쓰지 않고 하루를 제 속도대로 보내는 것 말이다.
가리야 무 캉 차이는 반얀그룹의 웰니스 브랜드 가리야가 베트남에 처음 선보인 리조트다. 큰 건물 한 채를 떡하니 세우는 대신 객실과 부대시설을 산과 논의 굴곡을 따라 띄엄띄엄 앉혔다. 객실·스위트·빌라를 합쳐 110실. 멀찍이서 보면 산비탈에 작은 마을 하나가 들어선 모양새다.
그 한가운데 대나무 로비가 있다. 들어서는 순간 고개가 절로 젖혀진다. 굵은 대나무가 높이 솟아 서로 휘감기며 곡선을 그리고, 그 틈으로 볕과 바람이 드나든다.
이 모습을 갖추기까지 7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천장을 다시 올려다봤다. 처음엔 그저 근사하다고만 여겼는데, 굽히고 엮어 올린 대나무 한 대 한 대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객실에는 대나무와 몽족 전통 직물의 색과 문양을 들였다. 그래도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건 창밖이다. 발코니 문을 열면 다랑논 너머로 산등성이가 겹겹이 포개진다. 한참을 바라봐도, 좀처럼 눈이 떨어지지 않는 풍광이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도시의 소음과도 잠시 떨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다. 서울에서라면 아까웠을 시간이겠지만, 여기선 이런 과정이 중요한 일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호사가 묘하게 폐부 깊이 스몄다.
틴판 총지배인이 특히 힘준 건 수면이다. 뉴로어쿠스틱 음악과 수면 상태 모니터링, 적색광 등을 하이드로테라피와 연계한다. 하이드로테라피는 온·냉탕, 레인 미스트 샤워, 적외선 사우나, 허브 스팀룸 등을 거치는 13단계로 구성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데웠다가 찬물에 식히고 다시 쉰다. 몇 차례 되풀이하자 산길에 잔뜩 굳어 있던 몸도 그제야 풀렸다.

다음 날엔 리조트 밖으로 나섰다. 공룡 능선 전망대에서 대나무 숲, 몽족 옥수수 가옥을 거쳐 홀스슈 힐까지 도는 종일 투어다. 이날 하루를 함께할 이동수단은 오토바이였다. 난생 처음 타보는 터라 가이드 등 뒤에 올라타는 순간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길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움푹 팬 곳을 지날 때마다 몸이 들썩였고 내리막에선 팔과 허벅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커브를 돌 때마다 가이드를 따라 몸을 기울였다. 잔뜩 얼어 있던 것도 잠시, 금세 재미가 붙었다.
흙먼지가 일고 바람이 뺨을 때렸다. 차창 너머였다면 스쳐 지났을 비탈의 집과 밭, 길가 사람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수확한 옥수수로 집 안이 가득 찬 몽족 가옥에는 처마 밑이며 벽이며 옥수수가 빼곡했다. 산에서 거둔 걸 말려 두고두고 먹는 살림이 그대로 보였다. 한쪽에 두런두런 둘러앉아 창밖으로 펼쳐진 다랑논을 눈에 담으며 몽족 가정식도 먹었다. 음식은 소박했지만 꽤 정갈했다.
멀리서 볼 땐 그저 아름답기만 하던 다랑논이었다. 가까이 들어와 보니 그 풍경 속에 사람들의 하루가 있었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내리며 논을 일구고 살아온 몽족의 삶이 있었다.


무 캉 차이에서는 시간을 아끼기가 쉽지 않다. 반나절을 들여 도착하고 다시 하루를 써 산 안쪽으로 들어간다.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게 된다. 일정표를 촘촘하게 짜도 산길은 좀처럼 그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떠나는 날은 새벽부터 부산했다. 아직 동도 트기 전, 짐을 챙겨 리조트를 나섰다. 사위는 어둑했고 산은 검은 윤곽만 겨우 드러냈다. 그렇게 다시 여섯 시간짜리 산길에 올랐다.
올 때와 달리 마음은 한결 느긋했다. 이번에도 졸다 깨기를 되풀이했지만 눈을 뜨면 창밖부터 찾았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오자 산비탈의 다랑논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올 때는 멀미가 날까 눈을 감고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던 길이었다. 돌아가는 날엔 굽이를 하나 돌 때마다 멀어지는 풍경이 못내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무 캉 차이에선 서둘러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산길을 한참 돌아야 다음 풍경이 나왔고, 오토바이를 타고 더 깊이 들어가야 마을과 사람을 만났다. 밀랍 선 하나도 서두르면 비뚤어졌다. 처음엔 그 느림이 답답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그 속도에 맞춰져 있었다.
다녀온 지 한 달 가까이 됐다. 멀미약에 패치까지 붙이고 버틴 여섯 시간은 벌써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길 끝에서 만난 것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또렷해진다.
커튼을 젖히던 첫 아침 눈앞으로 밀려들던 다랑논과 겹겹의 산,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맞던 바람, 그리고 대나무 틈으로 떨어지던 볕까지. 사진첩을 다시 들춰보지 않아도 여전히 선연하다.
무 캉 차이를 떠나온 건 한 달 전이다. 그런데 마음 한쪽은 아직 그 산길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