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읽음
거식증, 지방 조절 PLIN4 유전자 변이와 연관성 확인
알파경제
0
Global Health Pick은 메디컬투데이와 아임닥터(IMDOCTOR)가 엄선한 의료인 및 의대생 자문기자단의 검토를 거쳐 제작되는 의료 콘텐츠입니다.

최신 의학 정보와 근거 중심의 검증 과정을 바탕으로 독자 여러분께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건강 정보를 제공합니다.
[mdtoday = 조민규 의학전문기자] 거식증으로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생 위험에 지방과 근육에서 주로 작용하는 유전자가 관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지방 저장을 조절하는 ‘PLIN4’ 유전자의 희귀 변이가 일반 대조집단보다 약 4배 높은 빈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체중 증가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음식 섭취 제한, 왜곡된 신체 인식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섭식장애다. 심각한 영양실조와 심혈관계 합병증, 전해질 이상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정신질환 가운데 사망 위험이 높은 질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신경성 식욕부진증 연구는 주로 식욕과 보상체계, 불안, 강박적 행동 등 뇌와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질환이 정신적 요인뿐 아니라 에너지 대사와 체지방 조절에 관련된 생물학적 특성을 함께 갖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 154명의 단백질 암호화 유전체 영역을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가족력이 뚜렷하거나 여러 차례 치료에도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했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임상적 특징을 보이는 환자들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체에서 단백질 기능에 손상을 줄 것으로 예측되는 희귀 유전자 변이를 탐색했다.

그 결과 154명 가운데 17명, 약 11%에서 PLIN4 유전자의 희귀 변이가 발견됐다. 이는 일반 대조집단에서 확인된 약 3%와 비교해 거의 4배 높은 수준이다. 특히 6명의 환자에서는 PLIN4 단백질의 정상적인 기능을 크게 방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변이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4명의 가족에서는 섭식장애를 가진 가까운 친척에게서도 동일한 유전적 변화가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일부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에서 PLIN4 유전자 변이가 질환에 대한 취약성과 관련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PLIN4는 세포 안에서 지방을 저장하는 지질방울(lipid droplet)과 관련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다. 주로 지방조직과 근육에서 발현되며 세포가 지방을 저장하고 이용하는 과정에 관여한다. 이 유전자의 기능이 변화하면 지방 저장이나 에너지 이용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PLIN4가 뇌보다 지방조직과 근육에서 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유전적 취약성이 식욕이나 행동을 조절하는 뇌의 신호체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에너지 저장과 대사 과정에도 관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앞선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서도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유전적 위험은 정신질환 관련 특성뿐 아니라 체질량지수와 체지방량, 당·지질 대사 관련 특성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정신적 요인과 대사적 요인이 함께 관여하는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돼 왔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후보 유전자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PLIN4 변이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앞으로 PLIN4 변이를 가진 환자의 지방조직을 분석해 지방 저장 과정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또 PLIN4와 상호작용하는 다른 유전자 및 단백질을 조사해 에너지 대사 이상이 식욕과 체중 조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할 예정이다.

이러한 기전이 규명되면 기존의 영양재활과 심리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 표적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치료는 체중과 영양상태 회복, 심리치료, 신체적 합병증 관리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이 질환 자체의 치료제로 특별히 승인한 약물은 없다.

그러나 이번 연구만으로 PLIN4를 신경성 식욕부진증의 원인 유전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연구 대상이 154명으로 비교적 적고 가족력이나 치료 저항성 등 특정 특징을 가진 환자들이 포함됐기 때문에 일반적인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 전체에 결과를 적용하기 어렵다.

또 유전자 변이가 단백질 기능을 손상시킬 것으로 예측됐다는 사실과 실제로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연구진은 더 큰 규모의 독립적인 환자집단에서 결과를 재현하고 PLIN4 변이가 지방 저장과 에너지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을 단순한 식습관이나 심리적 문제로만 이해하기보다 유전적·대사적 특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단서로 평가된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됐다.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