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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ETF 1천개 돌파, 비교 안내판 시급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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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기자수첩.
박지윤 기자수첩.

퇴직연금 시장에서 선택지가 급격히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여 있던 자금이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흩어지며 ‘투자형 시장’으로 체질이 바뀌고 있다.

선택권이 확대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변화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9월 30일 기준 퇴직연금 계좌에서 거래 가능한 ETF는 1030개에 달했다. 상장 리츠 등을 포함하면 투자 가능한 상품은 1054개다. 한 증권사의 퇴직연금 계좌에서만 1000개가 넘는 ETF를 고를 수 있는 ‘ETF 백화점’이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전체 ETF(1175개) 대부분을 퇴직연금으로 담을 수 있게 됐다.

시장 규모도 폭발적이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 대비 16.8% 증가한 501조4000억원으로 500조원 돌파 기록을 썼다. 이 가운데 실적 배당형 상품 비중은 24.6%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백화점에 상품이 많다고 해서 쇼핑이 반드시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백화점에 물건이 빼곡하다고 쇼핑이 쉬워지지 않듯, 상품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선택의 피로와 정보 불균형이 발생한다.

특히 ETF는 이름만 보고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 같은 ‘반도체’나 ‘AI’ 테마라도 추종 지수, 편입 종목과 비중, 환헤지 여부, 수수료 구조에 따라 성과가 크게 갈린다. 자칫 최근 수익률만 보고 상품을 고르거나 유사 테마를 중복 수집할 경우, 의도치 않은 ‘위험 집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 수익이 아닌 노후 자금을 장기 운용해야 하는 퇴직연금의 본래 목적을 흔드는 요소다.

이 같은 선택의 어려움은 퇴직연금 제도에서도 이미 문제로 인식돼 왔다. 금융위원회는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가입자의 무관심 등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당시 최근 5년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1.94%에 그쳤다.

이제 당국과 금융사가 집중해야 할 다음 과제는 단순한 라인업 확장이 아니다. 1000개가 넘는 선택지 속에서 개인의 투자 기간과 위험 성향에 맞는 상품을 가려낼 수 있는 ‘안내판’을 세우는 일이다.

퇴직연금은 대박을 노리는 투자금이 아니라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장기간 쌓아가는 자산이다. 상품이 빼곡하게 들어찬 ‘ETF 백화점’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단순 수익률이 아닌 기초 지수, 자산 배분, 위험도, 총비용, 변동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정보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당국과 금융업계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많은 상품을 제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가입자가 노후에 맞는 길을 찾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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