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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데이터 플라이휠 가동, 피지컬 AI 기반 확보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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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한국자동차연구원 AI·자율주행기술연구소장 사진=한국자동차연구원

세계의 자율주행 경쟁이 심상치 않다. 미국 웨이모는 올해 2월 약 3000대의 차량을 운영했고, 6월 말까지 운전자 없이 달린 누적 거리는 2억7000만 마일을 넘어섰다. 중국의 확장세도 가파르다. 바이두 Apollo Go의 완전 무인 누적 주행거리는 2억4000만㎞를 넘어섰고, Pony.ai의 글로벌 로보택시 운영 대수는 6월 말 1975대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서울의 심야 자율주행 택시는 지난 8월 19대로 늘었지만 제한된 구역과 시간대에서 시험운전자가 동승한 채 운행하고 있다. 국내 곳곳에서 자율주행 실증이 진행되고 있지만 운전석을 비운 대규모 로보택시 상용 서비스는 아직 시작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수천 대의 차량이 매일 도시를 달리며 상용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중국과 우리의 격차는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차량 대수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 차량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데이터의 차이다. AI 자율주행에서는 차량이 데이터를 모으고, 그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며, 개선된 AI를 다시 차량에 배포한다. 성능이 좋아지면 운행 범위와 차량이 늘고, 더 많은 차량은 다시 더 많은 데이터를 만든다. 데이터 수집-학습-검증-배포가 순환하는, 이른바 '데이터 플라이휠'이다. 한번 제대로 돌기 시작하면 학습과 개선의 속도가 누적되기 때문에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완벽한 자율주행 기술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차량을 실도로에 투입하고 데이터 수집에서 학습, 검증, 재배포로 이어지는 플라이휠부터 하루빨리 돌리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상 이 플라이휠은 기술이 완성된 뒤에 돌리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과정에서 기술이 완성된다. 실제 환경에서 발견되는 오류와 개입, 수많은 에지 케이스가 다시 학습으로 돌아가면서 AI는 진화한다. 늦게 출발했다고 해서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출발 자체를 계속 늦추는 것이다.

그러나 실도로 데이터 플라이휠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미 선발 주자들이 축적한 수십억 ㎞의 실도로 주행거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뒤쫓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후발 주자에게는 플라이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그 회전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현실과 가상세계를 결합하는 것이다.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과 생성형 월드모델을 활용해 AI가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의 양과 다양성 즉 '경험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웨이모는 실제 도로에서 수억 마일을 달렸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이미 200억 마일 이상을 주행했다. 올해 웨이모가 공개한 월드모델은 실도로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희귀 상황을 생성할 뿐 아니라 같은 상황에서 차량이 다른 행동을 선택했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도 가상세계에서 만들어낸다. 시뮬레이션은 이제 AI가 행동과 결과를 반복 학습하며 정책을 개선하는 폐루프 학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로봇 분야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빠르다. 수많은 가상 로봇을 동시에 학습시키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충돌하는 실패까지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한 뒤 강화학습으로 개선된 정책을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Sim-to-Real 전이 방식이 확산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비용과 위험 때문에 반복하기 힘든 실패도 가상세계에서는 얼마든지 학습의 자산으로 바꿀 수 있다.

최근 세계는 피지컬 AI와 로봇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본질적으로는 '바퀴 달린 로봇'이다. 센서로 전방을 인식하고, 주변 세계의 변화를 예측하며 행동을 결정하고, 그 결과를 다시 학습한다는 점에서 기술적 궤를 같이한다. 데이터와 AI 모델, 월드모델, 시뮬레이션, 강화학습, AI 반도체, 안전 검증, 운영체제 등 핵심적인 기술 스택의 상당 부분을 공유한다.

그런 점에서 바퀴 달린 로봇을 대규모로 학습시키고 현실 세계에서 운영할 수 있는 기술 기반조차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두 발로 걷는 로봇 강국을 꿈꾸는 것은 사상누각일 수 있다. 자율주행은 로봇과 별개의 산업이 아니라 피지컬 AI 개발 역량을 실제 환경에서 대규모로 축적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험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글로벌 선두 기업들의 데이터 플라이휠은 지금 이 시간에도 빠르게 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대규모 플라이휠을 점화하고, 현실과 가상세계를 연결해 그 회전속도를 높이며 여기서 얻은 기술을 로봇과 제조로 확장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이 피지컬 AI와 로봇 강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교두보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차세대 산업을 스스로 진화시킬 피지컬 AI의 기반이며 AI 자율주행은 그 기반 위에 세워질 첫 번째 플랫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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