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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강원대‧경북대‧부산대 등 국립대부터 50년 된 군사정권 잔재 '학도호국단 학칙' 없앤다
아주경제유신정권 시절 학생 통제 수단으로 도입되어 전국 대학에 50년 넘게 잔존해 온 ‘학도호국단 잔재 학칙’이 마침내 국립대학부터 철폐될 전망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정감사 대면 질의를 통해 국립대 학칙 내 독소조항을 집중 추궁하자, 국립대학 총장들이 일제히 비민주적 학칙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전국총학생회협의회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가 발표한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 전수조사(전국 193개교 대상)’ 결과에 따르면, 전체 대학의 무려 99.0%(191개교)가 간행물 사전승인(59.1%), 집회 사전승인(49.7%), 게시물 사전검인(47.2%) 등 헌법에 위배되는 독소조항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아주경제」가 백승아 의원실과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 대표가 학칙 개정안을 스스로 발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명시한 대학은 전국 193개교 중 단 3개교(1.6%, 강원대·상지대·전주대)에 불과했다. 학칙의 제·개정 권한이 총장에게 독점되어 있고 학생 구성원의 발의권이 구조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보니,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가 잇따라도 대학들이 스스로 학칙을 바꾸지 않고 수십 년간 방임해온 것이다.
학생자치 징계부터 검열·게시 불허까지…비민주적 학칙의 피해 실태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독재정권 시절 만들어진 학칙은 대학 당국이 대학언론과 학생회 등 학생자치활동을 억압하는 무기로 악용되어 왔다. 대학 당국은 학생을 대등한 학내 구성원이 아닌 통제와 지도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학내 비판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학칙을 빌미로 보복성 징계와 검열을 서슴지 않았다.
가톨릭대에서는 2020년 8월 한 학생인권모임에서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신입생 환영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으나, 대학 본부가 ‘홍보물 게시 허가 및 검인 규정’을 이유로 반년 넘게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학생들이 현수막을 게시하자 대학 측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무단 철거·수거해 버렸다.
한신대에서는 2020년 총학생회장 등이 학내 비리와 비민주적 학사 행정에 맞서 천막농성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러나 학교 본부는 정당한 문제 제기를 수용하기는커녕 학생들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하고 집회 사전승인 학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대며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등 학생 여럿에게 무기정학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동덕여대에서는 교지편집위원회 「목화」가 지난 3월 제55집을 출간하자, 대학 본부가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며 지면을 강제 수거하겠다고 통보하고 편집실 퇴거 공문까지 발송하며 자치언론을 탄압했다. 다만 사회적 비판 여론이 불거진 이후, 9월에 간행물 ‘사전승인제’를 ‘신고제’로 개정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연세대의 홍콩 민주주의 지지 대자보 검인 거부, 홍익대의 경비노동자 추모 대자보 강제 철거 등 전국 각지 대학에서 학칙상의 사전승인제와 게시물 검인제가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도구로 상시 악용되어 왔다.
“사전승인제는 위헌”…2007년부터 이어진 국가인권위원회의 경고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학칙의 위헌성을 명확히 지적해 왔다. 인권위는 지난 2007년 3월 학생들의 집회 및 정치활동 등을 금지하는 학칙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아 국공립대학교 20개교에 해당 조항을 개정하거나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후에도 인권위의 시정 권고는 계속됐다. 2021년 9월 결정에서는 간행물 발간 및 집회 시 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 학칙을 개정·폐지할 것을 권고했으며, 2022년 9월 결정에서도 대학의 홍보물 게시 제한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8월과 12월 발표된 결정에서도 인권위는 “대학이 게시물을 사전 승인의 대상으로 삼는 규정에 근거해 대자보를 철거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과잉금지원칙, 사전제한금지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정하며 관련 학생상벌 규정과 사전 승인 학칙을 즉시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대학 자율성’ 뒤에 숨었던 교육부의 미온적 대응
그러나 주무 부처인 교육부는 국정감사 때마다 ‘대학의 자율성’을 핑계로 실효성 있는 행정조치를 회피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교육부는 지난 2021년 국정감사에서 윤영덕 의원 질의에 대해 “학칙 제·개정은 학교의 장 권한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교육부가 관여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소극적 답변을 했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강득구 의원 질의에서도 “학칙 내 비민주적·반헌법적 조항에 대하여는 대학 자체적으로 학칙의 제·개정 등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며 대학 자체 개선으로 공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3년 뒤인 2025년 국정감사 정을호 의원 질의와 대통령실 청년 정책제안 답변에서도 학도호국단 잔재 학칙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시정명령이나 전수조사는 단 한 차례도 시행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2026년 국정감사 백승아 의원 질의에서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제12조와 대학 자율성을 전제하면서 “대학의 학칙 등이 관계 법령을 위반해 대학 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히 지도·감독하겠다”고 답변해 개입 여지를 드러냈다.
백승아 의원 질의에…국립대 총장들 “시대에 맞지 않아, 개정할 것”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난 10월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대면 질의에서 백승아 의원은 현장에 참석한 국립대학교 총장 전원을 상대로 비민주적 학칙의 즉각 철폐를 강하게 촉구했다.
백승아 의원은 “헌법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집시법상 집회도 경찰서장 신고로 족하고 국회조차 집회를 허가하지 않는데, 진주교대 학칙은 학내외 집회까지 총장 승인을 받게 하고 경상국립대 학칙은 인쇄 간행물 배포 전 총장 승인을 강제하며 어기면 징계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07년 인권위 권고 이후 19년이 지났음에도 권고 대상 국립대 중 조항을 삭제한 곳은 창원대 한 곳뿐”이라며 총장들의 직무유기를 추궁했다. 이에 김성규 진주교대 총장은 “솔직히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정임을 인정한다. 학칙을 개정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4일 질의 대상 국립대 모두가 학칙 개정 요구에 수용 의사를 서면으로 전했다. 해당 대학은 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국립부경대·부산교대·부산대·진주교대·한국해양대 등이다.
강원대는 “기존 학칙은 대학의 교육목적을 위배하거나 수업·연구 등 학교의 기본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개인적 또는 집단적 행위와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었다”면서도 “통합대학 출범에 따른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의 자율적·민주적 활동을 보장하는 취지로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도 학생의 자율적·민주적 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한편 대학 구성원의 안전과 학습권이 조화롭게 보호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대는 “학생들의 집회·표현의 자유와 자치활동을 존중하고 있으며, 정치적 견해나 집회 내용을 이유로 학생활동을 제한한 사례는 없다. 해당 학칙은 수업·연구 등 대학의 교육·연구 기능과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학생은 연구 및 수업 등 학교의 본래적 기능 수행을 방해하는 개인 또는 단체 행위와 교육목적에 위배되는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학칙 제61조에 대해 “일부 표현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공감하며, 학생 대표 의견 수렴과 타 국립대학 사례 검토를 거쳐 제한 대상을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학칙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첨언했다.
경상국립대는 “학칙 및 학사관리규정에서 헌법과 법률에 어긋나는 사전승인·검열·학생활동 제
한 조항은 학칙 제 107조 및 제111조와 학사관리규정 제 159조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해당 규정들은 학생의 권리 제한과 더불어 인쇄물 배포·외부인사 초청·외부 연계활동·간행물 발행·집회행사 개최에 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해당 조항을 면밀히 검토하고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관련 규정을 2026학년도 내 삭제 또는 개정하도록 하겠다”고 첨언했다.
서면 답변을 받은 백승아 의원은 “국립대가 선도적으로 비민주적 학칙을 개정한다면, 전국 대학의 변화를 이끄는 선례가 될 것이다”라고 화답했다.
대학언론·학생회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 철폐, 전국으로 확대돼야”
대학언론과 학생회 관계자들은 이번 국립대 총장들의 학칙 개정 약속을 적극 환영하면서도, 이것이 구두 약속에 그치지 않고 전국 모든 대학의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 전면 폐지와 학생 학칙 개정 발의권 보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식을 접한 김태윤 전국총학생회협의회 집행위원장은 “50년 넘게 학생들을 억압해 온 유신정권 잔재 학칙을 철폐하겠다는 국립대 총장들의 결단을 환영한다”며 “학생을 통제와 지도의 대상이 아닌 대등한 학내 민주주의 주체로 인정하고, 전국 99% 대학에 퍼져있는 위헌적 학칙 삭제와 더불어 학생 대표의 학칙 개정 발의권이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역시 “이번 국립대 학칙 개정 약속을 계기로 대학 당국의 사전 검열과 보복 징계라는 위헌적 사슬이 끊어져야 한다”며 “비민주적 학도호국단 학칙이 철폐되어야 대학언론이 외압 없이 학내 비판과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펼치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대학언론의 정론직필은 학생자치와 대학민주주의를 만개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는 교육부가 전국 대학 학칙 독소조항에 대한 전수조사와 시정명령을 발동하고, 대학언론의 편집권과 독립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대학언론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제정에 적극 나설 것을 거듭 촉구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