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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특별보고관 “가자학살은 ‘미디어학살’…언론, 저널리즘 악용 ‘세탁’ 멈춰야”
미디어오늘
프란체스카 알바네제 유엔(UN) 팔레스타인 점령지(OPT) 인권특별보고관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제로 미디어를 지목했다. 이스라엘의 언론을 향한 체계적 공격·검열·선전, 그리고 이스라엘·서구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의 학살 정당화 메커니즘을 ‘미디어사이드’로 명명한 것이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26일 공개된 ‘폐허 밑의 진실: 제노사이드 시대의 미디어’ 보고서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집단학살이 ‘미디어를 상대로 한 학살’과 ‘미디어에 의한 학살’로 이뤄진 구조를 집중 해부했다. 그는 “목격자의 제거, 표현의 자유 탄압, 근본적인 언론 윤리 포기는 여러 면에서 언론의 공적 기능을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미디어사이드’에 해당할 수 있다”며 “진실의 말살은 집단학살의 체계적 실행 과정 그 자체”라고 밝혔다.
언론인 300명 살해, 150개 언론기관 파괴, 통신망 초토화
보고서는 미디어학살을 이루는 상호 연결된 세 가지 패턴을 열거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언론인 살해·신체 훼손·구금·고문·협박·낙인 및 언론인프라 파괴 △이스라엘의 검열·접근 제한·캠페인 등 정보통제와 이스라엘 언론 일각의 선동 △서구 유력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이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거나 이스라엘 서사를 재생산하는 행위 등이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그 양상의 첫 대목으로 ‘목격자 침묵시키기’를 꼽았다. 2022년 5월 이스라엘군의 시린 아부 아클레(Shireen Abu Akleh) 기자 살해 사건을 언급하며 “현재 언론에 자행되는 폭력과 면책 전형을 보여준다”고 풀이한 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군은 약 300명의 언론인을 살해하고 400명 이상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프레스(PRESS) 조끼와 헬멧, 취재 장비를 갖추고 언론이라 밝히는 차량이나 텐트에 머물렀으나 이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에 악용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023년 10월 이래 구금된 팔레스타인 언론인은 100명을 넘어선다. 약 30명은 지금도 수감돼 있다.
이스라엘이 언론인을 ‘테러리스트’ 또는 ‘하마스 공작원’으로 낙인찍는 행위도 범행 정당화 수법으로 꼽혔다. 그는 “국제인도법상 언론인은 오직 적대 행위에 직접 참여할 때만 민간인 보호 지위를 상실하며, 이를 입증할 책임은 공격자에게 있다. 특정 조직 소속과 정치적 견해 등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자지구에선 언론인 살해에 “극도로 잔인한 전쟁 수법”인 ‘더블 탭(double-tap)’이 사용됐다. 더블 탭이란 1차 폭격 이후 이를 취재하거나 구조하려는 인력이 모였을 때 이들을 2차 폭격하는 행위를 말한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들 행위가 모두 전쟁범죄라고 밝힌 뒤 “전쟁범죄와 반인도 범죄로만 분석하는 것은 불완전하다”며 “언론인 목격자들의 체계적 제거와 기록 수단의 파괴는 제노사이드의 고의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단언했다.
BBC·NYT 법적 용어도 못쓰게 해, ZDF 이스라엘 피해만 “야만” 표현 빅테크 유착도…이스라엘, 수천만불 X 광고로 ICJ 판단 부정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특히 유력 서구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을 미디어학살의 주요 주체로 꼽았다. BBC와 뉴욕타임스(NYT) 편집방침이 단적 사례다. BBC 스타일 가이드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지’라거나 ‘국제법 위배’란 설명 없이 이스라엘의 표현에 따라 ‘분쟁 지역’으로 기술하도록 했다. NYT에선 제노사이드·인종청소·점령지·팔레스타인 용어 사용을 자제시키는 보도 지침이 유출된 바 있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러한 편집 방침은 폭력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는 데 필수인 역사적 맥락과 법적 틀을 주변화했다”며 “나크바(Nakbah), 수십 년간의 점령과 가혹행위, 불법 정착촌 확장, 가자에 대한 19년간의 봉쇄에 대한 언급은 누락되거나 최소화되었고, 2023년 10월7일이 적대 행위의 시작점인 것처럼 묘사되었다”고 밝혔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또 “이스라엘인의 고통은 상세히 묘사되며 정서적·도덕적 무게가 부여된 반면,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은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부수적 피해로 다뤄졌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아동이 전체 아동 사망자의 약 99.7%를 차지하지만 CNN의 아동 희생자 보도 중 팔레스타인 아동 비중은 절반에 그쳤다. 그는 “도덕적 수식어 또한 차별적이어서, 독일 ZDF 방송에서 야만적(barbaric)이라는 표현의 90.7%가 이스라엘 피해자에게 쓰였고 팔레스타인 피해자에겐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X(트위터)와 메타와 같은 빅테크 플랫폼에서도 이스라엘 편향 ‘내러티브 조작’이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빅테크 임원과 이스라엘 관료들의 ‘상업적 유착’이 플랫폼 운영에도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는 인권 침해 기록물, 역사적·정치적 콘텐츠, 이스라엘 비판 게시물에 대해 게시물 삭제, 계정 정지, 도달 제한 및 ‘섀도우 배닝(shadow banning)’을 가하는 체계적 검열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미디어 지형도 검열과 왜곡, 선동으로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론이 ‘안보 사안’ 보도에 군의 사전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군사검열 제도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2024년 하루 평균 21건의 보도가 금지(1635건) 또는 부분 삭제(6265건)됐다. 지난해엔 매일 평균 15건이 금지 또는 부분 삭제됐다. 2023년엔 이스라엘 대테러법이 개정돼, 언론인을 ‘테러 지지로 간주되는 콘텐츠 소비’ 행위만으로 체포할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은 외신 상대로는 군 동행이나 연출된 견학을 제외하고는 가자지구 진입을 봉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디지털 플랫폼에 가장 많은 삭제 요청을 보내는 국가로도 꼽힌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X와 유튜브에서 서구 대중을 겨냥한 광고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일례로 이스라엘이 전쟁범죄인 고의적 기아를 초래한다는 국제사법재판소 보고서가 나오자, X와 5000만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해 “가자엔 식량이 충분하다”는 다국어 광고를 내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이스라엘 언론도 혐오와 집단학살을 선동해왔다며 “주류 및 친정부 언론에서 팔레스타인인은 ‘괴물’, ‘암 덩어리’, ‘박멸해야 할 식인종’으로 묘사됐다”고 설명했다.
언론에 “저널리즘 형식 악용한 선전 세탁 멈춰야”
알바네제 특별보고관은 권고에서 각국 정부와 UN 총회, 사법기구, 언론사, 플랫폼기업에 ‘진실기록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UN 총회에는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OPT) 내 언론인과 인프라를 겨냥한 범죄기록을 보존하기 위한 기구 설치 등을 권고했다. 각국 정부엔 팔레스타인 언론인 공격을 수사해 기소하고, 잔학행위 은폐을 돕는 언론사나 디지털 플랫폼과 협력관계를 재검토하라고 밝혔다.
언론사와 온라인 플랫폼에는 “저널리즘 형식을 악용한 프로파간다 세탁을 중단해야만 한다”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는 △교전 당사자 주장을 엄격히 검증하고, 오보는 동등한 비중으로 정정보도 △팔레스타인 관련 표현을 이유로 한 언론인 보복 중단 △국제범죄 혐의 관련 보도 삭제 중단 △국제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콘텐츠를 책임규명 기구에 제공 등을 요구했다.
그는 언론인단체와 대중을 향해서도 “잔학 행위를 기록하는 이들을 방어하고, 책임을 요구하고, 구금·실종 언론인에 관심을 지속하라”며 “권력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복제할 때 저널리즘은 공적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이날 인권이사회 결의를 거쳐 UN 총회에 제출됐다.